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훈(좌완투수)/선수 경력 (문단 편집) === 2002 시즌 === 방출 후 [[KBO 리그]] 복귀 의사를 타진했고[* 이상훈 홈페이지 게시판에 전단장이였던 어윤태 사장이 돌아와 달라는 의사를 표시했고 이상훈은 추후에 '잠실에서 뵙죠.'라는 말과 함께 복귀를 암시하기도 했다.], [[김성근]] 감독이 이를 받아들여, 귀국하자마자 친정팀 LG와 연봉 4억 7000만원에 계약하며[* 당시 전 구기 종목 통틀어 최고액 연봉이었다.] 복귀한다. 2002년의 팀의 4강 턱걸이와 준우승에도 고참 투수로서 공헌했다.[* 복귀 당시 이상훈의 혈행장애를 몰랐던 김성근 감독은 그를 선발로 쓰려고 했다. 사실 이 당시 LG는 선발 투수가 부족했다. 외국인 투수 2명(만자니오, 케펜)과 노망주 [[김민기(1977)|김민기]]를 제외하면 선발감이 없었고 그래서 해외 진출 전에 선발로 맹활약했던 이상훈을 선발진에 넣고 기용하려 했던 것이다.] 구원 이닝으로만 100이닝을 넘긴 [[이동현(1983)|이동현]]과 [[장문석]]과 마찬가지로 지독한 혹사를 당했다. 한 달 반 늦게 시작했는데 85.2이닝이나 던졌다.[* 만일 풀타임을 소화했던 100이닝 돌파 확정이었을 것이다.] 특히 [[2002년 한국시리즈]]에서는 준플레이오프,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이미 많이 지친 몸을 이끌고 3경기 연속 등판하는 투혼을 보였으나 결국 시리즈 전적 2:3으로 뒤지고 있던 6차전에 9:6으로 앞서던 9회 말 [[이승엽]]에게 동점 3점 홈런을 맞은 후 강판당했고,[* 나중에 [[KBS N 스포츠]]의 한국프로야구 10대 레전드 - [[이승엽]]편에서 밝히기를, [[병살타]]를 유도하려고 했는데 [[이승엽]]에게 맞았다고 했다. 3점차에 아웃카운트가 2개 남아있었기 때문에, 병살유도보다 한타자씩 차근차근히 잡아나간다는 생각으로 던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.][* 다만 이승엽만 잡았을 경우, 그 뒤에는 앞선 5차전에서 이상훈에게 쓰리런 홈런을 때린 [[마해영]]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, 이미 구위가 떨어진 이상훈 입장에서는 이승엽에게 병살타를 유도해서 경기를 빨리 끝내는 것이 최선책이었다.] 뒤이어 등판한 [[최원호]]가 곧바로 [[마해영]]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연속으로 내주면서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. 그리고 마운드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린 [[최원호]]의 마지막 모습 이후 LG는 [[6668587667|10년 동안 가을야구를 맛보지 못했고]], 다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기까지 [[2023년 한국시리즈|21년이나 걸렸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